[보험] 사고 후 사망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장해가 고정되었다면 상해보험금을 지급해야 (판결, 일시적 장해상태, 고의자살 관련)

물에 빠진 피보험자, 심정지 상태에서 심폐소생술을 받고 살아났지만 ‘저산소성 뇌병증’으로 10개월간 치료받다가 결국 사망한 경우

참고로, ‘사망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의 일시적 장해’인지 아니면 ‘고정된 장해’로서 보험금 지급사유에 해당하는지와 관련하여서는 ‘[판결] 태아곤란증 출생 직후 사망…후유장해 보험금 못 받는다‘에서도 다루었다. 위 글의 사안은 출생 중 태아가 ‘태아곤란증’을 겪고 사망한 사고였다.

[사안] 엄마와 싸우고 집 나온 고등학생, 엄마에게 “난 죽을 테니 알 바가 아니다” 문자메시지 직후 물에 빠진 채 발견

#1 엄마와 심하게 다투고 집을 나간 피보험자

피보험자는 엄마,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 피보험자의 부모는 이혼하였는데, 엄마가 새로운 남편과 만나서 살다가 헤어졌는데 그 사이에 여동생을 낳았다.

사고는 2020년 3월 18일에 났다. 피보험자는 2003년생이었으니, 사고 당시에 16세(고등학교 2학년)였다.

평소에 피보험자는 엄마와 자주 다투었다. 이유는 게임, 취침, 식사 등이었다.

사고가 발생한 날에도 피보험자는 엄마가 잔소리를 하자 크게 다투었다. 피보험자는 욕하고 물건도 집어던졌다. 엄마는 13:22경 경찰에 신고하였고, 경찰에게 “피보험자와 며칠 떨어져 있고 싶다”고도 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건 처리를 위해 피보험자에게 엄마한테 사과하도록 시켰다. 하지만 경찰이 떠난 후 엄마는 피보험자에게 집을 나가라고 했다.

#2 엄마와 통화, 문자메시지를 끝으로, 다리 아래 물에 빠진 채 발견돼

집에서 나온 피보험자는 15:25경 엄마와 통화를 했다. 전화 중에도 다툼은 이어졌다. 엄마는 피보험자에게 “엄마가 더는 못 키우겠다. 아빠한테 전화하거나 아니면 당분간 보육원에 2~3일 정도 가서 있어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통화를 마친 직후 15:30경, 피보험자는 엄마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피보험자가 엄마와 주고받은 문자]

 ○ 피보험자: 
"자식은 둘인데 애비가 한 명도 없는 이유를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이제껏 아빠에 대해 지닌 선입견이 잘못된 거 같고 괜시리 미안해진다. 항상 자기 방식대로 강요하고 방식을 따르지 않으면 초등학생한테도 집을 나가라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던 거 같다. M가 불쌍하다. 난 죽을 테니 알 바가 아니지만"

 ○ 엄마: 
"죄송하다더니 더 이상 아무 말 하고 싶지 않다. 죽든지 살든지 니 알아서 해라. 니 애비번호는 000-0000-0000"

이후 약 10분가량 지난 15:41경, 피보험자는 주거지 인근 다리 아래 물에 빠진 채 발견됐다. 당시 피보험자를 목격하고 신고한 사람은 “풍덩!”하는 소리가 나서 보니 사람이 물에 빠져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목격자는 피보험자가 물에 떨어지는 모습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3 저산소성 뇌병증, 뇌병변장애로 10개월간 투병하다 사망

인근 병원으로 옮겨진 피보험자는 심정지 상태였다. 심폐소생술에 성공했지만 이미 뇌가 손상된 상태였다. 그렇게 ‘저산소성 뇌병증’으로 진단된 피보험자는 병원과 요양병원에 반복해 입원하며 치료받았다. 사고 후 약 10개월이 흐른 2021년 1월, 피보험자는 객혈을 하다 사망했다. 사망진단서에 적힌 직접사인은 ‘저산소증’이었고, 직접사인의 원인은 ‘객혈’이었다.

#4 엄마는 상해후유장해 보험금 2억 4천만원을 청구

피보험자의 엄마는, 피보험자가 사망하기 전인 2020년 9월 ‘뇌병변장애’로 진단받았다는 이유로 ‘상해후유장해’ 보험금을 청구했다. 케이비손해보험은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고, 결국 소송이 이루어졌다. 청구된 보험금은 2억 4천만원이다.

[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5민사부1는 2023년 8월, 이 사건에 대한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사고 후 6개월만에 ‘뇌병변장애’로 진단받고, 다시 4개월이 지나 사망한 피보험자는 “사망으로의 진행단계에서 거치게 되는 일시적 장해상태”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고정된 장해상태”에 있었고(쟁점①), 일반인의 상식에서 자살이 아닐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을 할 만한 사정이 있기 때문에 ‘고의에 의한 자살’로 인정할 수 없다(쟁점②)고 판단했다.

쟁점① – 사망으로 진행하는 과정?, ‘일시적 장해’ vs ‘고정된 장해’

피보험자는 사고 직후 심정지 상태였다. 그런데 심폐소생술을 통해 심장 기능은 회복하였다. 하지만 심정지로 전신의 혈류 공급이 차단되면서 ‘저산소성 뇌손상’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저산소성 뇌손상은 심정지로 뇌에 혈류가 공급되지 않은 시간이 어느 정도였는지에 따라 나타나는 증상이나 예휴가 다양하다.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식물인간 상태가 되고도 장기간 생존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반드시 사망에 이를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 피보험자도 사실상 식물인간에 준하는 상태였고, 간혹 의식 수준이 호전되기도 하였지만, 뚜렷한 의식이나 신체기능의 호전은 없이 10개월간 생존하였다.

피보험자의 사인에 대한 감정의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 심정지 후 저산소성 뇌병증 등 합병증으로 스스로 객담 배출을 할 수 없어 기도절개관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서 기계적인 압력으로 객담을 뽑아냈는데, 이에 따른 지속적인 기계적 자극이 점막을 손상시켰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 대량의 객혈은 기도를 폐색시키거나 출혈 자체로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고 신속한 지혈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보험자는 사고 후 10개월간 회복이나 호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태였으나, 생존 기간이 매우 불확정적인 상태에 있다가 합병증이 발생하여 사망하였다. 감정의도 “망인이 이 사건 사고 후 10개월 동안 대부분을 저산소성 뇌손상에 따른 후유증으로 침상 생활을 유지하며 의미 있는 의사소통이 어려웠고 이후 다양한 합병증으로 치료받다가 결국 객혈로 사망한 것을 고려하면 저산소성 뇌손상에 의한 장해로 증상이 고정된 상태로 사망으로 진행하는 과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여, 피보험자의 증상은 ‘일시적 장해상태’였다기 보다는 ‘고정된 상태’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여기서 감정의가 ‘사망으로 진행하는 과정’이라고 한 것은 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므로 감정의의 표현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쟁점② – 고의・자살 면책, 집 나간 16세(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난 죽을 테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한 후 물에 빠진 사고

재판부가 ‘고의’에 의한 사고가 아니라 ‘우연한 사고’라고 판단한 주요 이유(근거)는 다음과 같다.

  1. 피보험자가 물에 떨어지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없다.
  2. 피보험자는 아직 정신적이나 신체적으로 미숙한 16세의 청소년이다. 이런 피보험자가 “난 죽을 테니 알 바가 아니지만”이라는 문자를 남긴 것으로 ‘자살의 의사’를 추단하기는 부족하다.
  3. 피보험자가 평소에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없다. 또한, 학교 생활기록부에도 피보험자가 평소 긍정적으로 장래희망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4. 구조활동지(119)에는 피보험자가 물에 빠져 튜브를 걸치고 허우적대고 있다는 내용이 있다. 이는 자살을 시도한 사람이 아니라 우연한 사고로 물에 빠져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의 모습에 부합한다.
  5. 사고 당시 피보험자가 떨어진 다리(교각)는 보행로를 공사 중으로 차단선을 쳐서 막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엄마와 다툼 후에 흥분상태에 있던 피보험자가 사람이 오지 않는 다리 위를 찾았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자살로 볼 주위정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6. 만약 피보험자가 고의로 다리(교각)에서 떨어진 것이라도, 정신적, 신체적으로 미성숙한 피보험자가 엄마와 다툼으로 인해 극도로 흥분하여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한 행위라고 봄이 타당하다.2

[노트]

이 사건은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어서 확정된 상태는 아니다.

보험금 소송에서 ‘고의에 의한 면책(자살)’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고의에 의한 사고가 아닐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아야 한다. 자살이 아닐 가능성에 대한 의심이 들만한 사정이 있다면, 이는 고의 면책이 입증되지 않은 것으로 본다. 그래서 재판부가 ‘고의에 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의심된다’면서 고의 면책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고의나 심신상실은 사실관계에 대한 법적인 평가이고, 특히 보험금 사건에서 고의는 ‘입증’의 문제이기도 해서 확실한 ‘법적인 평가’의 영역에 있다. 때문에 ‘고의’나 ‘심신상실’에 관한 판단은 쉽사리 예측하기 어렵다. 법적인 평가란 평가자(법관)의 개인적인 양심(주관)에 좌우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기준 없는, 자의적인 판단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평가의 기준은 ‘사회 일반인의 상식’이다.3 따라서 고의나 심신상실에 대한 판단이 사회 일반인의 상식에서 납득하기 어렵다면 그 판단에는 오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사건 판결에서 의문이 드는 것은 ‘고의’에 대한 판단이다. 재판부는 ‘자살이 아닐 가능성에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고 판단했다. 피보험자가 엄마와 크게 다투고 집을 나가서 “난 죽을 테니 알 바가 아니지만”이라는 문자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불과 10분만에 다리에서 떨어져 물에 빠진 채 발견됐다. 이 상황에 대해서 “자살이 아닌 사고일 가능성”에 대한 의심이 합리적이라는 것이고, 그 합리적 의심이 사회 일반인의 상식이라는 판단이다. 개인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렵다.

자살을 암시하는 내용의 문자를 남기고 10분여만에 뛰어내렸지만, 실족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의심은 과도하게 지엽적이다. 뛰어내리는 모습을 직접 본 사람이 없다거나, 물에 빠진 피보험자가 허우적대고 있었다는 판단의 근거도 ‘실족 가능성’과는 관련이 없다. 자살하려 뛰어내렸더라도 본능적으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에 뛰어내리는 모습을 본 사람은 없지만, 자살을 암시하고 불과 10분만에 물에 빠진채 발견됐다면 고의로 뛰어내렸다는 이외의 상상을 하기는 어렵다.

피보험자가 16세의 청소년으로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미성숙하기 때문에 “난 죽을 테니 알 바가 아니지만”이라고 말한 것이 ‘진정으로 자살하려는 의도’를 보이는 말은 아니라는 추정도 모순된 부분이 있다. 재판부는 ‘만약 고의에 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피보험자가 정신적, 신체적으로 미성숙한 청소년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순간의 격분으로 뛰어내렸을 수 있으므로 심신상실 상태에서의 사고이다’라는 취지로 판단했다. 피보험자가 고의에 의한 자살을 한 것이 아니고, 고의로 자살하였다고 하더라도 심신상실이라는 것인데, 두 경우에 대한 근거는 모두 ‘피보험자의 정신적, 신체적 미성숙함’이다.

피보험자가 특별히 또래에 비해 정신적으로 미성숙했다는 내용은 없다. 그런데 여느 16세, 고등학교 2학년의 청소년이라면 ‘삶’과 ‘죽음’에 대해 이해하고 결정할 정도의 의사결정능력은 갖추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청소년인 피보험자가 ‘다소’ 충동적으로 자살을 택하였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살을 택하는 모두가 긴 시간동안 진지한 고민, 성찰을 거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한 진지한 태도가 있어야만 ‘고의’인 것일까. 재판부의 논리라면 다소 충동적인 자살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고의로 자살한다고 볼 수 없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자살을 택하였다는 것이 분명해야만 ‘고의’라는 판단은, ‘고의’의 의미를 지나치게 축소한 판단이다. 사람이 언제나 명료한 판단 하에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 않나.

참고로, 실제로 이 사건이 발생한 다리의 사진을 첨부한다.

(사진) 피보험자가 물에 빠진 것으로 기록된 다리 사진


  1. 판사 최규연(재판장) 김지영 김민주
  2. 고의에 의한 사고라고 하더라도 ‘심신상실 상태’에서 발생한 사고이므로 보험금 지급사유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3. 대법원 2002. 3. 29. 선고 2001다49234 판결 등 참조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