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피보험자의 과잉진료 방지에 관한 주의의무(서울중앙지법 2021가단5349621 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22. 12. 6. 선고 2021가단5349621 판결

① 사실관계

한화생명보험의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한 피보험자가, 근골격계 질환(요추부 및 경추부 협착 등)으로 약 3개월 기간 동안 총 35일간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습니다. 이 기간 발생한 병원비는 약 4,780만원에 이르렀고, 건강보험급여를 제외한 피보험자의 부담금액도 약 4,350만원에 이르렀습니다.

피보험자는 한화생명보험을 상대로 본인부담금액에 대한 실손보험금을 청구하였는데, 한화생명보험은 피보험자의 본인부담금액 중 약 3,570만원이 약관상 보장하지 않는 손해에 해당하거나 불필요한 과잉진료에 대한 비용이라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였고,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만 실손보험금(약 325만원)을 지급하였습니다.

보험금 지급을 거절한당 피보험자는, 병원을 상대로 과잉진료로 인한 비용을 반환해줄 것을 청구하는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하였으나 패소했습니다.

② 법원의 판단

②-1. 과잉진료로 인한 치료비도 실손보험금 지급사유에 해당

먼저 법원은 “환자가 다수의 보험계약 등을 이용하여 부정한 이익을 취할 목적으로 의사와 통모하거나 과잉진료행위가 이루어짐을 알면서도 이를 용인하거나 유도하는 등 불법행위나 사회질서에 반하는 행위를 한 것이 아닌 한 의사의 판단과 치료행위에 수동적으로 응하여 과잉진료라는 결과가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보험약관상 보험금 지급사유 요건을 충족하는 보험금의 지급을 거절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피보험자가 의사와 공모하고 과잉진료를 받은 경우와 같이 적극적인 불법행위 또는 반사회적 행위가 없었다면 실손보험금 지급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②-2. 피보험자가 과잉진료를 방지할 주의의무를 위반하였다면 보험금액을 감액할 수 있어

그리고 법원은 덧붙여서, “피보험자로서는 사회적 평균인으로서의 주의만 기울이면 자신에게 행하여지는 치료행위가 과잉진료행위에 해당함을 충분히 알 수 있다고 할 것이므로, 자신에게 돌아오는 직접적인 이익은 없더라도 의사가 실손의료비보험 제도를 이용하여 부정한 이익을 취하게 되어 결과적으로는 다수의 선량한 보험가입자들에게 손해를 전가시키며 실손의료비보험 제도의 근간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할 것이고, 이러한 주의의무를 게을리 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경우에는 형평의 원칙에 비추어 실손의료보험 금액을 감액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피보험자가 의사와 공모하여서 과잉진료가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경우에도 피보험자는 의사가 과잉진료를 하여서 실손보험을 통해 부정한 이익을 취하지 않도록 할 주의의무를 부담하고, 이러한 주의의무를 위반한 피보험자에 대해서는 실손보험금을 감액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법원은, 한화생명보험은 피보험자가 부담한 의료비 중 1,000만원에 대해서만 실손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는데, 이는 피보험자가 부담한 치료비(약 4,350만원) 중 보험약관상 면책되는 영양제 비용 등을 제외한 치료비(약 3,700만원)의 약 27%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즉, 피보험자는 과잉진료를 방지할 주의의무를 위반한 책임으로 본래 실손보험 적용 대상이던 치료비 중 27% 부분만 실손보험을 적용받게 된 것입니다.

참고: 진료방법 선택에 관한 의료인의 상당한 재량

대법원은 무의미한 연명치료장치 제거 등에 관한 사건에서 “환자가 의사 또는 의료기관(이하 ‘의료인’이라 한다)에게 진료를 의뢰하고 의료인이 그 요청에 응하여 치료행위를 개시하는 경우에 의료인과 환자 사이에는 의료계약이 성립된다. 의료계약에 따라 의료인은 질병의 치료 등을 위하여 모든 의료지식과 의료기술을 동원하여 환자를 진찰하고 치료할 의무를 부담하며 이에 대하여 환자 측은 보수를 지급할 의무를 부담한다. 질병의 진행과 환자 상태의 변화에 대응하여 이루어지는 가변적인 의료의 성질로 인하여, 계약 당시에는 진료의 내용 및 범위가 개괄적이고 추상적이지만, 이후 질병의 확인, 환자의 상태와 자연적 변화, 진료행위에 의한 생체반응 등에 따라 제공되는 진료의 내용이 구체화되므로, 의료인은 환자의 건강상태 등과 당시의 의료수준 그리고 자기의 지식경험에 따라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진료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상당한 범위의 재량을 가진다. 그렇지만 환자의 수술과 같이 신체를 침해하는 진료행위를 하는 경우에는 질병의 증상, 치료방법의 내용 및 필요성, 발생이 예상되는 위험 등에 관하여 당시의 의료수준에 비추어 상당하다고 생각되는 사항을 설명하여, 당해 환자가 그 필요성이나 위험성을 충분히 비교해 보고 그 진료행위를 받을 것인지의 여부를 선택하도록 함으로써 그 진료행위에 대한 동의를 받아야 한다. 환자의 동의는 헌법 제10조에서 규정한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에 의하여 보호되는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서, 환자가 생명과 신체의 기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에 대하여 스스로 결정하고 진료행위를 선택하게 되므로, 의료계약에 의하여 제공되는 진료의 내용은 의료인의 설명과 환자의 동의에 의하여 구체화된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09. 5. 21. 선고 2009다17417 전원합의체 판결)

즉, 대법원은 환자에 대한 진료방법 선택에 있어서 의료인이 상당한 범위의 재량을 가지고, 다만 수술과 같이 신체를 침해하는 진료에 대해서는 환자가 의료인의 설명을 듣고 진료행위의 필요성이나 위험성을 충분히 고려하여서 동의를 할 권리를 가진다고 보았습니다. 의료인과 환자 사이의 진료계약의 내용은 의료인의 설명과 환자의 동의로 구체화된다는 것입니다.

노트: 피보험자에게 과잉진료 방지에 관한 주의의무를 부담시킬 수 있는가?

위 사건 판결은 실손보험 피보험자가 과잉진료를 방지할 주의의무를 부담한다고 판단한 첫 사례지만, 일부 반론이 제기될 여지도 있습니다.

① 보험약관에 명시되지 않은 의무를 피보험자에게 부담시킬 수 있는지

①-1. 과잉진료 방지에 관한 주의의무의 법적 근거: 권리남용 금지의 원칙

피보험자가 과잉진료 방지에 관한 주의의무를 부담하고 그 주의의무 위반시 보험금 삭감이라는 불이익을 부담하는 근거로서 법원이 제시한 것은 ‘형평의 원칙’입니다. 형평의 원칙이란 (굳이 따져보면) 민법상 신의성실의 원칙 중에서도 권리남용 금지의 원칙과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보험계약은 사적자치의 원칙이 적용되므로 당사자 사이의 합의로 계약사항을 정할 수 있지만, 사적 합의가 현저한 불균형을 초래한다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민법 제2조 제2호)

권리남용 금지의 원칙(민법 제2조 제2호)은 요건과 효과가 구체화되지 않은 백지규정이고, 당사자 주장 없이도 법원이 직권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송덕수(2021), 신 민법강의 42면; 대법원 1989. 9. 29. 선고 88다카17181 판결] 실제로 위 사건(서울중앙지법 2021가단5349621)에서도 당사자의 구체적인 주장 없이 재판부가 직권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①-1. 약관규제법상 약관해석의 원칙에 위반된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습니다.

보험약관에는 약관규제법이 적용되는데, 약관규제법은 약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해석되어야 하고, 고객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서는 아니 되며, 약관의 뜻이 명백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되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약관규제법 제5조)

약관 해석에 있어서도 신의성실의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권리남용 금지의 원칙에 따라서 피보험자에게 과잉진료 방지에 관한 주의의무를 부담시키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보험약관에 명시되지도 않았고 위반시 보험금 감액이라는 보험계약의 주된 목적이 제한되는 불이익을 감수하여야 하는 의무를 고객(피보험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약관의 뜻이 명백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되어야 한다고 정한 약관규제법 제5조 제2항 취지에 반한다는 비판도 제기될 수 있을 것입니다.

② 피보험자에게 과잉진료 방지에 관한 주의의무 이행을 기대할 수 있는지 (기대가능성이 있는지)

②-1. ‘기대가능성’에 관한 논의

기대가능성은 기본적으로는 형법에서 책임조각사유로 논해지는 개념입니다. 위법행위를 하지 않을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경우라면, 즉 위법행위를 할 수밖에 없었다면, 위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민사법의 영역에서도 기대가능성은 간혹 등장합니다. 예컨대 권리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음에도(즉, 기대가능성이 있음에도) 상당한 기간 행사하지 않아서 그 상대방이 권리자가 더 이상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신뢰하게 되었다면 권리행사가 제한된다는 실효의 원칙이 있습니다.1

또한 대법원은, 농약판매업자가 농약을 판매하면서 농약의 성능이나 주의사항 들을 설명하여 줄 주의의무가 있는지와 관련하여서 농약판매업자에게 그러한 주의의무를 요구할 수 있는 기대가능성이 없으므로 그 주의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이 없다고 본 원심을 파기하고 기대가능성을 인정하면서 손해배상책임도 인정한 사례가 있습니다.(대법원 1995. 3. 28. 선고 93다62645 판결)

②-2. 환자로서 의사의 진료행위를 받는 피보험자에게 과잉진료 방지에 관한 주의의무를 요구할 수 있는 기대가능성이 있는지

위 사건(서울중앙지법 2021가단5349621)에서 재판부는 피보험자가 사회적 평균인으로서의 주의만 기울이면 자신에게 행하여지는 치료행위가 과잉진료행위에 해당함을 충분히 알 수 있기 때문에, 의사가 실손의료보험 제도를 이용하여 부정한 이익을 취하게 되어 결과적으로는 다수의 선량한 보험가입자들에게 손해를 전가시키며 실손의비보험 제도의 근간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할 주의의무를 부담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피보험자가 사회적 평균인으로서 주의만 다한다면 의사가 과잉진료로써 실손보험을 이용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다(즉, 기대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진료행위 선택에 있어서 의사는 전적인 재량을 가지며 환자는 수동적으로 진료행위를 허용할지 거부할지 선택할 수 있을 뿐입니다. 게다가 진료 현장에서 환자는 의사의 전문성을 신뢰하고 또한 의사에게 의존하는 것이 현실인데, 이런 상황에서 피보험자가 실손보험제도의 근간을 지키기 위해서 과잉진료인지 판단하고 거부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더욱이 위 사건(서울중앙지법 2021가단5349621) 재판부도 “원고(피보험자)가 이 사건 병원이 입원치료가 더 이상 불필요함에도 필요 이상으로 입원기간을 늘리거나 과잉진료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였다고 볼만한 뚜렷한 자료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피보험자가 과잉진료행위를 명확히 인식하였다고 볼만한 뚜렷한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과잉진료를 방지할 주의의무를 요구할 수 있는 기대가능성이 있는지에 관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을 것입니다.

③ 비판에 대한 비판: 이 사건의 지나친 (과잉)진료행위

위 사건에서 피보험자는 입원 당시 만 60세였는데, ‘요추부 및 경추부 척추강 협착, 요추부 및 경추부 추간공 협착, 요추부 및 경추부 추간판 탈출증, 근막통 증후군, 장경인대 증후군, 양측 슬관절 골관절염 및 활액막염, 양측 견관절 회전근개 손상 등’으로 진단받고 약 35일간 입원하였고, 건강보험 적용 후 피보험자가 부담한 진료비 총액은 약 4,350만원에 이르렀습니다.

진단명이 많지만, 대부분 관절이나 근육, 염증에 관한 것이고 피보험자가 만 60세인 점을 고려하면 피보험자가 (생명에 위협이 된다는 등) 특별히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지도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약 35일간의 입원기간 동안 건강보험 적용 후 피보험자가 부담한 진료비가 총 4,350만원이라는 점은 상당히 이례적으로 보입니다.

즉, 이정도로 이례적인 (과잉)진료행위라면 피보험자가 과잉진료로 인식하고 거부할 것을 기대하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더욱이, 피보험자는 한화생명보험이 실손보험금 지급을 거절하자, 병원을 상대로 과잉진료로 인한 진료비 반환청구소송을 하였으나 패소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위 사건(서울중앙지법 2021가단5349621) 재판부가 피보험자에 대한 진료행위가 과잉진료로서 보험금 지급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할 경우 앞선 소송과 상반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그런 판단을 피하려 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피보험자에 대한 진료행위가 지나치게 과도했던 것으로 보여서, 위 사건(서울중앙지법 2021가단5349621) 재판부가 내린 결론은 타당해 보입니다.

  1. “권리자가 실제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그 권리 행사의 기대가능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기간이 경과하도록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하여 의무자인 상대방으로서도 이제는 권리자가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할 것으로 신뢰할 만한 정당한 기대를 가지게 된 다음에 새삼스럽게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법질서 전체를 지배하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결과가 될 때에는, 이른바 실효의 원칙에 따라 그 권리의 행사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대법원 1992. 1. 21. 선고 91다30118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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