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간경변(간경화) 진단 받고 고지하지 않아도 된다 (판결, 유병자보험)

[요약] 보험계약 체결시 작성하는 청약서의 ‘계약 전 알릴의무’ 양식에서 ‘간경화증의 진단’ 여부를 묻고 있는 경우에 여기서 말하는 ‘진단’이란 보험약관상 보험금 지급사유로 정해진 ‘확정진단’과 같은 의미라고 해석한 판결을 소개

[유병자보험] 더 간단한 ‘계약 전 알릴의무’

계약 전 알릴의무는 보험에 가입하는 피보험자의 건강 상태에 대해 보험회사에 알려주는 절차이다. 보험회사는 피보험자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생명이나 질병에 관한 보험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피보험자의 건강 상태를 알아보려는 것이다.

보험회사는 ‘계약 전 알릴의무’를 통해서 알아낸 정보를 이용해 보험에 가입시켜줄 사람을 선별한다. 자신들의 기준에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보험 가입을 거절하는 것이다.

즉,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계약 전 알릴의무’가 보험에 가입하려는 사람들을 걸러주는 ‘필터’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계약 전 알릴의무가 필터와 같다면, 이러한 필터를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주로 병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병을 앓았던 사람들이다. 보험회사는 이 사람들이 다시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서 보험 가입을 거절한다.1

하지만, 생각해보면 병에 걸리거나, 걸렸던 사람은 보험의 필요성을 더 크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생긴 것이 ‘유병자보험’이다. 유병자보험은 병에 걸리거나, 걸렸던 사람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계약 전 알릴의무’가 간단하다. 간단한 계약 전 알릴의무로 필터(=계약 전 알릴의무)를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아지고, 결국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사람도 많아진다.2

[사안] 만성 B형 간염 → 간경변증 → 유병자보험 가입 → 간이식 수술 → 간암 확정진단

피보험자는 2014년 2월경부터 ‘만성 B형 간염’으로 진단받고 치료받았는데, 이후 2014년 7월에는 ‘간경화를 동반한 간섬유증(K74.2)’으로도 진단됐다.3

2016년 6월경 혈액검사에서는 혈소판이 74K/UI로 나타났는데, 이는 정상범위인 150K/UI ~ 450K/UI에 미달하는 것이어서 ‘혈소판 감소증’ 소견을 보였다. 그리고 2016년 9월경 시행한 복부초음파 검사상으로는 비장이 커져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간경변증에 따른 합병증이라는 소견이었다.

이후에도 2018년, 2019년, 2020년에 계속해서 ‘간경화’ 및 ‘비장비대’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피보험자는 2018년 10월 18일이에 유병자보험에 가입하면서 ‘간경화증’으로 ‘진단’받은 사실이 없다고 통지했다.

피보험자가 가입한 유병자보험의 '계약 전 알릴의무'
[최근 5년 이내] 암, 협심증, 심근경색, 간경화증, 뇌졸중증(뇌출혈, 뇌경색), 투석중인 만성신장질환으로 의사로부터 다음과 같은 의료행위를 받은 사실이 있습니까?
1) 진단 2) 입원 3) 수술

→ 피보험자의 답변 "아니오"

만성 간염으로 인한 간경변증은 ‘간암’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4 피보험자도 2020년 6월경 간이식 수술을 받았고, 이때 조직검사를 해본 결과 ‘간암’으로 진단을 받았다.

[판결] 계약 전 알릴의무에서 말하는 ‘진단’이란 보험금 지급사유를 구성하는 ‘확정진단’과 같은 의미

이번 판결의 요지는 ‘계약 전 알릴의무’에서 말하는 ‘진단’의 의미가 보험금 지급사유에서 말하는 ‘확정진단’의 의미와 같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험금 지급사유에서 말하는 ‘확정진단’은 일정한 요건이 있는데, 계약 전 알릴의무에서 말하는 ‘진단’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한 ‘확정진단’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피보험자가 ‘간경변증’으로 진단받은 것은 ‘혈액검사’와 ‘초음파검사’에 기초한 것이고, 이는 의료현장에서 일반적인 모습이다. 간경변증의 진단은 조직검사를 통한 ‘병리학적 진단’과, 영상검사(초음파, CT, MRI)와 혈액검사를 통한 ‘임상적 진단’이 있지만, 실제로 조직검사를 통해 간경변증을 진단하는 일은 잘 없다.5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지방법원 민사29단독 재판부6는 (1) 유병자보험은 질환을 앓고 있거나 병력이 있는 소비자도 간소화된 절차를 통해 가입할 수 있는 보험상품이어서 계약 전 알릴의무에서도 치료, 투약 등과 같은 통상적인 의료행위 관련 사항은 대폭 삭제되었고, (2) 이 사건의 계약 전 알릴의무에서 ‘진단’이 ‘입원’이나 ‘수술’과 같은 중요한 의료행위와 병렬적으로 열거되어 있으므로 여기서 말하는 ‘진단’이란 ‘확정진단’으로 한정하여야 하며, (3) 피보험자는 보험설계사에게 만성 B형 간염 보균자가 먹는 항바이러스제와 간 기능 개선을 위한 처방(바라크루드, 고덱스)을 알려주었고, (4) 진료차트에 ‘(K742) 간경화를 동반한 간섬유증’과 같은 기재가 있더라도 이를 확정진단이라고 볼 수 없다는 등의 이유를 열거하며 계약 전 알릴의무에서 말하는 ‘진단’이란 암 진단에서와 같은 ‘확정진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결국, 피보험자는 보험가입 전에 초음파검사와 혈액검사를 바탕으로 ‘간경변증’으로 임상적 진단을 받은 바가 있지만 조직검사를 통한 확정진단은 보험가입 이후에서야 이루어진 것이므로 계약 전 알릴의무를 위반하지 않았고, 보험회사(삼성화재)는 암보험금을 지급해야 했다.

[노트] ‘간경변증’에 대한 확정진단 방법은 약관에 정해져 있지 않다는 지적도 필요

이번 판결7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점이 많다.

재판부는 계약 전 알릴의무에서 말하는 ‘간경변증의 진단’이란 ‘간경변증의 확정진단’으로서 ‘조직검사를 통한 간경변증 진단’을 의미한다고 해석하였다. 그런데 의료현장에서 간경변증을 조직검사로 진단하는 일은 거의 없다. 결국, 재판부의 논리로는 소비자가 이 보험에 가입하면서 ‘간경변증의 진단’ 사실을 알려야 하는 경우는 거의 발생하지 않게 된다.

재판부는 약관의 뜻이 명백하지 않은 경우에는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여야 하고, 계약 전 알릴의무 양식에서 ‘간경변증의 진단’이 ‘임상적 진단’을 포함한다고 기재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하지만 현실에서 거의 발생하지 않는 ‘조직검사를 통한 간경변증 진단’ 여부를 묻는다고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불분명하다’는 해석은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진다.

더욱이, 재판부가 말하는 ‘확정진단’ 방법으로서 ‘조직검사’를 통하는 것은 ‘암’에 대한 이야기다. 즉, 보험약관에서 ‘조직검사’를 통한 ‘확정진단’을 요구하는 것은 ‘암’에 관한 것이지 ‘간경변증’에 관한 경우가 아니다.

실제로 이 사건에서 문제된 당시의 삼성화재 유병자보험 약관에서는 ‘간경변증’을 “5대기관질병”으로 분류하고, “5대기관질병”의 진단확정방법으로는 “병원, 의원 또는 국외의 의료관련법에서 정한 의료기관의 의사자격을 가진 자에 의한 진단서에 의합니다”라고 정하고 있다. 즉, 이 사건 보험약관에서 ‘간경변증의 진단’은 ‘의사에 의한 진단’으로 정하고 있을 뿐이고 ‘조직검사를 통한 진단’을 요구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재판부가 ‘(간)암의 확정진단’ 방법을 ‘간경변증’에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한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8

물론, 병에 걸렸거나, 걸렸던 사람들을 위한 보험인 ‘유병자보험’의 특성을 고려한 판결로 보이기는 하다. 재판부도 판결 이유에서 ①번으로 유병자보험의 성질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유병자보험의 특성을 고려할 때 ‘계약 전 알릴의무’의 범위를 최대한 좁게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도 이해가 된다.

또한, 금융감독원의 ‘표준사업방법서’에서도 계약 전 알릴의무에서 ‘간경변의 질병확정진단’을 질문하고 있다. 보험업계의 표준이 되는 양식에서도 단순한 ‘진단’이 아닌 ‘확정진단’을 묻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재판부가 이 사건 보험계약에서도 ‘확정진단’을 질문한 것으로 판단도 수긍할 수는 있겠다.9

(위 그림) 표준사업방법서 생명보험 계약 전 알릴의무 양식 중 10대 질병에 관한 질문 부분

  1. 병력을 기준으로 보험가입을 거절하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보험은 여러 사람들을 모아서 위험을 분산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보험사고 발생 가능성이 비슷한 집단을 구성하여야 합리적으로 운영된다. 보험에 가입한 사람들 중에서 유독 보험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보험료를 더 많이 내거나 보험 집단에서 배제되는 것이 공평하다.
  2. 일반적인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사람은 굳이 이 보험에 가입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보험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진 보험이 되고, 결국 일반적인 보험에 비해 보험료가 훨씬 비싸다.
  3. 간경화는 의학적으로는 ‘간경변증’이라고도 불린다. 간염이 장기간 지속되면 간에 흉터가 쌓이는 ‘간섬유화증’이 진행된다. 간섬유화증이 간 전반에 걸쳐 진행되면 간견변증이 된다.[출처: 서울아산병원 질환백과 간경화(Liver cirrhosis)]
  4. 서울아산병원 질환백과 간경화(Liver cirrhosis) 참조
  5. 실제로 “서울대학교병원 N의학정보 간경변증(Liver cirrhosis)“에서도 “간경변증 발생의 원인이 되는 인자(만성 B형 간염, 만성 C형 간염, 과도한 음주 등)가 있는 사람에게서 문맥 고혈압의 징후가 있을 경우 간경변증을 진단할 수 있다. 신체검진이나 복부 초음파 검사상 복수 또는 하지 부종, 비장의 비대 등이 관찰되거나, 내시경 검사에서 식도정맥류로 나타나면 문맥 고혈압의 징후로 판단할 수 있다. 가장 확실한 진단은 간의 조직검사를 통해서 내릴 수 있지만 간경변증의 진단을 위하여 조직검사를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라고 하여서, 간경변증 진단을 위해 조직검사를 하는 경우는 잘 없음을 알 수 있다.
  6. 재판장 임재훈
  7. 확정된 판결이다.
  8. 민사소송에는 변론주의 원칙이 적용되므로 재판부가 자의적으로 이런 논리를 펼쳤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보험회사 측 변호사가 약관상 ‘간경변증의 진단방법’이 ‘암의 진단방법’과 다르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9. 물론 이런 점이 판결 이유에 기재되어 있지는 않으므로, 실제로 이러한 사정까지 고려된 판결인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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